잔인하다. 하지만 장경철을 향한 나의 마음에 비하면 잔인하다 말할수 없다.
영화 타임 투 킬에 보면 흑인남성 칼리 해일리은 자신의 딸을 무참히 짓 밟은 생양아치 두 백인을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
총으로 난사한다.
만약 법이란게 짓 밟힌 딸의 아버지 마음처럼 집행될수 있었다면 칼리 해일리가 총 대신 법 앞에 심판을 받게 했을지 모른다.
뜻 밖에 오늘 칼리 해일리의 마음 같은 김 수현을 보았다.
지금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내 여자친구를 장경철이 그랬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김 수현의 마음 같지 않을까?
이성적으로 이 영화를 보기에는 이 영화의 전제 만약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감정에 너무 깊게 개입하고 있다.
그리고 범인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김 수현의 거침없고 시원시원한 린치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.
그럼에도 잔인성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피해자 지인들의 내면의 분노를 김 수현을 통해 너무 적날하게
묘사했기 때문이다.
우리의 내면은 그 것보다 더 잔인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직접 보기에는 너무
거슬리거나 불편하지 않았나 싶다.
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이승철의 노래를 불러주는 김 수현이 그토록 잔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깊이 되새겨 본다면
나는 그 보다 더 할수있는 마음이다.
악마을 때려 잡을려면 악마가 될수 밖에 없다.
팔이 부러져도 그 짓거리는 생각나는 모양이다.다리가 절뚝거려도 여전하다.천사의 날개를 위장한 악마를
때려잡으려면 인간이 아닌 악마가 되어야 만 했다. 그래야 공평하다.
살려달라는 애원의 목소리는 하찮은 소리로 들릴뿐인 장 경철을 대하는 우리의 입장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다.
법이 멀다면 주먹으로 때려 잡아야 하고 공권력이 무능하다면 직접 나설수 밖에 없다.
이 모든게 우리가 접하는 현실이란게 더 잔인하며 두렵다.
영화에서 최 민식의 연기는 제목처럼 악마 그 자체다.
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최 민식이 아닌 장 경철의 캐릭에 이 를 갈 정도의 분노감이 밀려온다.
나는 너가 죽은 후에도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어. by 김 수현
뒤돌아 서는 김 수현의 모습과 마지막 죽는 순간 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장 경철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.
우리가 사는 현실이 이토록 차갑고 모질다는 걸 악마를 본 후 알게 되었다.
머리속에 '잔인'이라는 두 글자와 김 수현의 '분노'를 놓고 본다면 나는 후자에 손을 들고 싶다.
이리 저리 얽혀버린 스토리 보다 무지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는 이성적인 시선이 아닌 감정적인 시선으로 김 수현을 따라 붙는다.
정말 김 수현이 잔인 했다면 장 경철에게 받은 만큼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뒤돌아서는 쓸쓸한 엔딩이다.
이 리뷰를 쓰는 나 또한 이성적이기 보단 감정적일 수 밖에 없다.
나도 너가 죽은 후에도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어. by 에테르